사생활 중시 독일 사회, AI 도입 놓고 '트로이의 목마' 논쟁 팽팽
알렉스 카프 팔란티어 CEO (사진= AFP 연합뉴스)
독일이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기업 팔란티어의 도입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에 휩싸였다. 흩어진 데이터를 분석하고 시각화해 범죄자와 테러리스트를 추적한다는 이 회사의 프로그램을 독일 정부 치안기관이 사용해야 하는지를 두고 내각부터 국민까지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구글이나 애플 대신 팔란티어가 요즘 독일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이유다.
이 논쟁은 개인정보 보호와 국가 안보라는 핵심 가치가 충돌하면서 불거졌다. 개인의 사생활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독일인들에게 '빅브라더'를 떠올리게 하는 팔란티어의 기술은 즉각적인 반감을 샀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독일 국민의 개인정보가 대서양을 넘어 미국으로 유출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졌고, 이 프로그램이 사실상 미국 정보기관의 '트로이의 목마'라는 주장도 공개적으로 제기되었다.
실제로 팔란티어의 주요 고객은 미국 국방부와 연방수사국(FBI), 이민세관단속국(ICE) 등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독일 자유권협회(GGF)는 "바이에른은 고담시티가 아니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헌법에 보장된 정보 자기결정권 침해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는 오사마 빈라덴 사살작전에 쓰인 것으로 알려진 팔란티어의 핵심 플랫폼 '고담(Gotham)'을 겨냥한 비판이었다. 결국 이 소프트웨어 도입을 막아달라는 헌법소원이 제기되고, 동일한 내용의 청원에 25만 명이 서명하는 등 반대 여론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팔란티어의 창업자 피터 틸과 알렉스 카프 모두 독일계 이민자 가정 출신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독일인 할아버지를 둔 트럼프처럼 이들은 정작 고국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처지다. 특히 알렉스 카프는 팔란티어 설립 전 독일 프랑크푸르트괴테대학에서 위르겐 하버마스의 지도를 받아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간 소외를 경계했던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학문적 영향을 받은 그가 개인 데이터를 분석하는 사업을 한다는 사실은 씁쓸한 역설로 다가온다.
카프는 팔란티어에 대한 비판에 대해 "좌파 친구들은 우리 일을 싫어한다. 팔란티어가 막아낸 모든 공격이 실제로 이뤄졌다면 좌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반박에 나섰다. 그는 네오마르크스주의자를 자처하며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카멀라 해리스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반면 공동 창업자인 피터 틸은 골수 트럼프 지지자이자 '페이팔 마피아'의 일원이다.
'좌우를 아우르는' 방산업체라는 딜레마에 대해 카프는 해결책으로 헤겔의 변증법을 꺼내 들었다. 그는 "팔란티어의 핵심은 나와 피터가 회사를 만들 때 독일의 고전적 접근법을 따랐다는 점이다. 우리는 모두 모순의 지양이라는 헤겔의 개념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헤겔 변증법의 발상지인 독일에서는 이러한 언급을 영리한 영업 수단으로 평가절하했다. 주간지 슈피겔은 카프가 프랑크푸르트에서 훈련받은 변증법적 사고를 활용해 회사에 대한 비판을 오히려 끄집어낸 뒤 무력화하는 능력을 갖췄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반대 여론이 거세도 팔란티어의 기술 윤리에 맞설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는 데는 한계가 명확했다. 테러 위협이 일상이 된 유럽의 현실 속에서 팔란티어가 제공하는 기술의 실용성을 마냥 무시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디지털 주권'을 둘러싼 논쟁이 반복되지만, 독일은 여전히 미국 기술에 깊이 의존하고 있어 마땅한 대체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이달 기준 독일의 모바일 검색 점유율은 구글이 93.4%에 달한다. 팔란티어 도입을 둘러싼 독일의 복잡한 셈법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저작권자 ⓒ 국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이우창
기자
-
"올해는 손길 하나 더"… 앞치마 두른 英 왕세손의 특별한 크리스마스
-
이재명·민주당 동반 하락, 국힘은 상승… 지지율 격차 줄었다
-
일본은행, 30년 철옹성 ‘0.5% 벽’ 깼다… 기준금리 0.75%로 인상
-
"정권 2번 뺏긴 건 우리 부족 탓"… 장동혁, '강성' 벗고 쇄신 승부수
-
"리튬 줄게, 달러 다오"… 벼랑 끝 볼리비아, 미국 향해 'SOS'
-
국힘 "환율 1,500원 목전인데 정부는 뒷짐"… 경제 정책 '대전환' 압박
-
트럼프 2기 1년, '관세 폭탄'과 '돈로주의'로 세계 질서를 다시 쓰다
-
확 바뀌는 새해 부동산, '이것' 준비 안 하면 낭패 본다
-
핏빛으로 얼룩진 시드니 '빛의 축제'…반유대주의 테러 가능성
-
20대 8%p '와르르'… 이재명 대통령, 54.3%로 숨 고르기
-
"국민에게 돌려준다"더니... 도로 '구중궁궐'로 숨는가
▲대통령 집무실 청와대 복귀가 임박한 21일 종로구 청와대 앞에 경찰 초소가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올해 연말, 대통령실이 현재의 용산 청사에서 다시 청와대로 복귀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정국이 술렁이고 있다. 정부는 안보와 경호 효율성, 그리고 집무 공간의 협소함 등을 이유로 들고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싸늘하다 못해 허탈감마저 감돌고
-
"AI가 지키는 명동의 크리스마스… 인파 꽉 차면 '경고 방송' 뜬다"
서울 중구(구청장 김길성)는 크리스마스와 새해맞이 행사를 앞두고 내년 1월 4일까지 명동 일대 안전관리를 대폭 강화한다고 22일 밝혔다. 구는 지난 19일부터 특별대책 가동에 들어갔으며, 인파가 집중될 것으로 예상되는 12월 24~27일, 31일, 1월 1일 등 총 6일간을 집중관리 기간으로 지정했다. 특히 구는 크리스마스인 25일 순간 최대 5만 명
-
1심 유죄→2심 무죄→대법 파기… '누디즘' 립스틱 반전 판결의 전말
자사 브랜드명을 제품명 앞에 붙였더라도 타인이 먼저 등록한 식별력 있는 단어를 제품명에 포함했다면 상표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제품명의 특정 부분이 독립적인 식별력을 가진다면, 그 부분(요부)의 유사성을 근거로 침해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상표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
"크게 도우면 크게 요구하라"... 통일교, '청와대 진입' 시나리오 법정서 공개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가 지난 20대 대선을 앞두고 조직적으로 정치권에 개입하려 한 정황이 법정에서 구체적인 증거와 함께 공개됐다. 한학자 통일교 총재의 재판에서 공개된 회의록과 간부 간 대화 내용에는 청와대 진입과 공천권 확보를 넘어 2027년 대권 도전까지 논의한 사실이 포함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우인성) 심리로 19일 열린
-
박범계·박주민 '선고유예' vs 나경원 '벌금형'... 패스트트랙 판결 '형평성' 도마 위
이른바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박주민 의원이 1심에서 벌금형의 선고를 유예받았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형평성을 잃은 판결"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2부(김정곤 부장판사)는 19일 폭력행위처벌법 위반(공동폭행) 등 혐의로 기소된 박범계·박주민 의원에게 각각 벌금 300만 원의 선고를
-
챗GPT 독주 체제, 제미나이가 흔들까?… 국내 AI 지형도 분석
국내 휴대전화 이용자 4명 중 3명은 인공지능(AI) 서비스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픈AI의 '챗GPT'가 시장을 주도하는 가운데 구글 '제미나이'가 급성장하며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18일 이동통신 전문 조사기관 컨슈머인사이트가 발표한 '2025년 하반기 이동통신 기획조사'에 따르면, 국내 14세 이상 소비자 중 AI 서비스를
-
'당구 여제' 김가영부터 인천유나이티드까지… 2025년을 빛낸 인천의 별들
인천시와 인천사랑운동센터는 지난 16일 송도컨벤시아에서 '2025년 올해의 인천인 대상' 시상식을 개최했다. 올해로 11회째를 맞은 이번 시상식에서는 인천의 명예를 높이고 지역 발전에 기여한 개인 9명과 단체 1팀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개인 부문 수상자는 ▲박용열 대한노인회 인천시연합회장 ▲김학찬 인천펜싱협회장(치과의사) ▲이재구 국경없는학교짓기 대표
-
'여대'가 사라진다... 30곳에서 14곳으로 '반토막' 난 이유
동덕여자대학교가 2029년 남녀공학 전환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학내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때 30여 곳에 달했던 국내 여대가 시대적 변화 속에서 어떠한 길을 걸어왔는지 그 변천사와 현주소를 심층적으로 조명했다. ◆ 국내 여대, 30여 곳에서 14곳으로 축소 과거 4년제 대학과 전문대, 간호·사범계 단과대학을 포함해 30곳이
-
"‘한 잔은 약주’는 옛말… 고혈압 예방엔 완전 금주가 답"
소량의 음주라도 중단하면 혈압 강하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일본 도쿄과학대와 세이루카국제병원 연구팀은 약 6만 명의 건강진단 자료를 분석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16일 밝혔다. 연구팀은 2012년부터 2024년까지 세이루카국제병원에서 건강진단을 받은 5만 8,943명의 검진 데이터 35만 9,717건을 분석했다. 연구진은 연령,
-
114억 챙긴 '가짜 AI 의사'와 '짝퉁 약'… 식약처 철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온라인 쇼핑몰과 SNS 등에서 인공지능(AI) 기술을 악용해 가짜 전문가를 내세우거나 일반식품을 의약품으로 오인하게 만든 업체 16곳(판매 규모 약 114억 원)을 적발했다고 15일 밝혔다. 식약처는 해당 업체에 대해 관할 기관에 행정처분을 요청하고 수사를 의뢰했다. 이번 점검은 지난 10월 28일부터 이달 12일까지 진행됐다. 식약처는
국일일보 © 국일일보 All rights reserved.
국일일보의 모든 콘텐츠(기사 등)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RSS




